“공교롭게도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위암에 걸렸습니다.”
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는 결핍이고, 상처였습니다. 위암으로 돌아가신 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지만,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. 30년을 돌아서 다시 찾아온 위암 앞에서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습니다. “일찍 자식 곁을 떠난 게 아버지 뜻이 아니었다는 걸.”
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는 결핍이고, 상처였습니다. 위암으로 돌아가신 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지만, 아버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. 30년을 돌아서 다시 찾아온 위암 앞에서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습니다. “일찍 자식 곁을 떠난 게 아버지 뜻이 아니었다는 걸.”
희망의 끈을 붙잡고 찾은 종양내과 강윤구 교수는 10%의 가능성을 말했습니다. “10%? 1% 가능성만 있어도 이겨낼 수 있어.” 고통스러웠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항암치료와 수술을 받았고, 수술 후 11년이 흐른 지금 색소폰을 연주하는 위암 환우회 회장으로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. “암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을 버리세요. 4기라도 말기가 아닙니다.” 원문보기
2019/09/14 23:12
Uploaded By @Vlogger